2010년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지만, 정작 장기 흥행에는 실패한 영화가 있습니다. 김민석 감독의 <초능력자>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다른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컨설팅 현장에서 완벽하게 설계된 시스템이 단 하나의 내부 변수 앞에서 무너지던 그 순간들이요.

초능력자, 완벽한 통제 뒤에 숨겨진 시스템 오류의 공포
과거 인천 서구의 한 제조 기업 디지털 인프라 개편 프로젝트를 자문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리스크 거버넌스(Risk Governance)란 조직 내 위험 요소를 사전에 식별하고 통제하는 체계 전반을 일컫는 말인데, 저는 그 체계가 얼마나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든 간에 예측 불가능한 내부 변수 하나가 들어오면 순식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몸으로 실감했습니다.
모든 지표가 전멸을 가리키는 상황에서 느끼는 압박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공포는 숫자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신뢰하던 시스템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 찾아옵니다.
<초능력자>의 '초인'은 그 공포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캐릭터입니다. 그는 오큘로모터 컨트롤(Oculomotor Control), 즉 시선을 통한 신경학적 조종 메커니즘을 초자연적으로 구현한 존재입니다. 여기서 오큘로모터 컨트롤이란 안구 운동을 통해 대상의 인지와 행동을 유도하는 신경 제어 방식을 가리키는데, 영화는 이걸 단순한 초능력이 아니라 권력과 통제의 은유로 사용합니다. 유년 시절부터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오직 자신의 능력만을 믿으며 살아온 초인이, 전당포 '유토피아'에서 뜻밖의 면역 변수를 만납니다. 바로 임균남이라는 인물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시스템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나타날 때, 그게 오히려 시스템의 진짜 약점을 드러내는 리트머스 역할을 합니다. 균남이 초인의 조종에 반응하지 않는 장면이 영화 초반부터 반복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그 '오류'가 균남이라는 인물 자체의 성격을 설명해주는 장치인 셈입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통계에 따르면 2010년 국내 개봉 한국 영화 중 초능력·SF 소재 작품의 평균 손익분기점 달성률은 45% 수준에 그쳤습니다. 초능력이라는 소재가 한국 관객에게 얼마나 낯선 장르였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이 영화가 배우들의 비주얼과 첫날 흥행에도 불구하고 장기 흥행에 실패한 배경에는 이런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초인이 균남의 저항에 밀려 사장을 잃게 만들고, 경찰마저 비웃으며 도주하는 중반부의 전개는 서늘하게 잘 설계되어 있습니다. 균남이 초인을 쫓기 위해 확보하려는 폐쇄회로 영상(CCTV) 포렌식 데이터는 디지털 증거 수집의 기본 절차인데, 그 절차조차 사설 업소들에게 번번이 막히는 장면은 시스템 바깥의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액션보다 그 무력감을 더 오래 붙잡고 있다는 점에서요.

개연성의 안일한 타협과 PPL이 깨뜨린 긴장감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아쉽게 본 지점은 두 가지입니다.
- 중반부 노드 VPN 광고의 노골적이고 긴 삽입이 서사의 긴장감을 단절시킨 점
- 후반부 결말이 초인의 맷집 설정에만 기대어 너무 빠르게 마무리된 점
PPL(Product Placement Advertising)은 영화 속에 상품을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간접 광고 기법인데, 여기서 PPL이란 극의 흐름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선에서 브랜드를 노출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 영화에서의 VPN 광고가 '자연스럽게'라는 전제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겁니다. 균남과 동생들이 초인의 행적을 추적하는 긴장된 순간에, 화면이 전환되듯 VPN 서비스의 기능을 장황하게 소개하는 장면이 삽입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관객이 몰입의 최고조에 올라갔을 때 억지로 브레이크를 거는 연출이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배우의 동선 등 화면 구성 전반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영화 연출의 핵심 개념인데, 이 영화는 초반부의 미장센이 굉장히 정교합니다. 아이의 눈을 감아놓은 채 집 안을 걸어 다니게 하는 도입부의 조용한 공포, 전당포 내부의 좁은 프레임 속에서 벌어지는 충돌 같은 장면들은 예산과 무관하게 연출력이 충분히 살아있는 장면들입니다. 그러니까 PPL이 더 눈에 밟힌 겁니다. 잘 만든 그릇 위에 억지로 광고를 붙여놓은 느낌이랄까요.
경찰서 장면의 처리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초인의 시선 조종에 면역인 존재가 균남뿐이라면, 경찰에 넘겼을 때 어떻게 될지는 이미 예측 가능합니다. 그런데 형사들이 "거짓말 탐지기 대면 되잖아요"라며 수사 방식을 희화화한 채 넘어가는 전개는, 앞서 쌓아올린 심리적 압박감을 스스로 해제해버리는 효과를 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인천 프로젝트 당시 경영진이 "매뉴얼대로만 하면 된다"며 현장 변수를 무시하던 장면이 겹쳤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과신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바로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거라 믿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카타르시스(Katharsis)라는 개념은 이 영화에서 분명하게 기능합니다. 카타르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연극이나 서사를 통해 억눌린 감정이 정화되는 심리적 경험을 말합니다. 균남이 초인을 껴안고 건물 아래로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논리보다 감정의 해소에 집중한 연출입니다. 개연성보다 정서적 해방을 택한 셈이죠. 한국 관람객의 장르 영화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결말의 감정적 만족도가 재관람 의향과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결국 <초능력자>는 완벽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배우들의 비주얼 때문만은 아닙니다. 거대하고 불가항력적인 통제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어떤 설명보다 더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감각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강동원과 고수 두 배우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작품입니다. 단, VPN 광고가 나오는 장면에서 잠깐 마음의 준비를 하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