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법을 가장 먼저 버린다면, 그걸 과연 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직접 극장에서 두 편을 연달아 보고 나서 며칠째 이 질문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특수경찰과 FBI 요원, 공권력의 최전선에 섰던 두 남자가 시스템의 배신을 마주하고 스스로 심판자가 되는 이야기, 어웨이크너와 블랙라이트입니다.
부패 정치가 만들어낸 두 개의 분노
두 영화를 나란히 놓고 보면 구조적 유사성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어웨이크너의 미구엘은 브라질 특수 경찰 부대 소속 요원이고, 블랙라이트의 트래비스는 미국 FBI 소속 해결사입니다. 둘 다 국가 권력의 최전선에서 일한 인물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딸이라는 연결고리로 무너집니다. 미구엘은 빈민촌의 열악한 의료 시스템 탓에 총상을 입은 딸을 잃고, 트래비스는 자신이 목숨 걸어 지켜온 조직에 의해 딸과 손녀가 납치당합니다. 제가 직접 두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들에서 유독 오래 멈췄던 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단순한 서사 장치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작은 상처 하나에도 가슴이 무너지는데, 시스템의 실패로 자식을 잃는다는 설정은 제게 오락 영화의 클리셰가 아니라 원초적인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바로 내러티브 트리거(Narrative Trigger)입니다. 내러티브 트리거란 주인공의 가치관이나 행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사건을 의미합니다. 두 영화 모두 이 장치로 가족의 피해를 선택했는데, 이는 관객의 감정 이입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사적 제재를 정서적으로 정당화하는 구조로 작동합니다. 실제로 관객 몰입도와 도덕적 판단 완화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룬 연구에서도, 주인공에 대한 감정 이입 수준이 높을수록 폭력적 행동에 대한 도덕적 비판 임계치가 낮아지는 경향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학회).
두 작품이 공유하는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권력 내부자인 주인공이 시스템의 부패를 직접 경험한다
- 가족(딸, 손녀)이 그 부패의 직접적 피해자가 된다
- 법 집행자에서 스스로 심판자로 전환하는 가치관의 붕괴가 일어난다
- 최종 빌런은 개인이 아닌 구조적 부패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카타르시스의 정체, 그리고 불편한 진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웨이크너를 보면서 미구엘이 가면을 쓰고 부패 정치인 산드라의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거든요. 그 찌릿한 감각이 카타르시스(Catharsis)입니다. 카타르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비극적 서사를 통해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고 심리적 정화를 경험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결정적인 증거가 있어도 유유히 풀려나 대통령 선거에까지 출마하는 산드라의 모습이 쌓아 올린 분노가, 미구엘의 손을 통해 한꺼번에 터지는 구조입니다.
블랙라이트의 트래비스(리암 니슨)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그는 평생 국가를 위해 어둠 속에서 일해온 인물입니다. 강박증이라는 설정도 통제 불가능한 세상에서 소중한 것을 지키려 했던 내면의 방어기제처럼 읽혔습니다. 그런 그가 정작 자신의 딸과 손녀를 납치한 것이 국가 조직의 수장 로빈슨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은, 단순한 액션 영화의 갈등 구조를 넘어섭니다.
그런데 제가 두 영화를 비교하며 불편하게 느낀 지점도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법치주의(Rule of Law)의 기능을 철저히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사적 제재를 정당화합니다. 법치주의란 국가 권력과 개인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게 구속된다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법과 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패 권력의 도구로만 묘사됩니다. 미구엘이 부패 정치인들을 하나씩 제거할 때마다 그 공백을 채우는 건 더 거대한 악인 안테르 회장이었습니다.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 없이 개별 인물만 처단하는 방식은 일시적인 청량감을 줄 뿐, 구조적 부패의 재생산을 막지 못합니다. 영화적 쾌감을 위해 폭력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플롯은 서사 구조가 다소 1차원적이라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장르 문법과 현실 사이, 이 영화들이 남긴 것
두 영화 모두 장르 관습(Genre Convention)에 충실하게 기댑니다. 장르 관습이란 특정 영화 장르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서사 패턴, 인물 유형, 결말 구조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천재 해커 니나가 등장해 부패 정치인 리스트를 손쉽게 유출시키거나, 수십 명의 베테랑 요원들이 주인공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해 쓰러지는 장면은 리얼리티보다 카타르시스를 우선시한 선택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볼 때는 통쾌하지만, 극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허점이 눈에 밟히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두 영화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사회적 맥락은 가볍지 않습니다. 어웨이크너는 브라질의 빈부 격차와 붕괴한 공공 의료 시스템이라는 현실을 배경으로 깔고, 블랙라이트는 정보기관 내부의 구조적 비리라는 실제 논란을 소재로 삼습니다. 실제로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브라질은 2023년 기준 180개국 중 104위에 머물며 공공부문 부패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이 매년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국제투명성기구). 영화 속 산드라가 수갑이 채워졌다가도 유유히 풀려나는 장면이 단순한 극적 과장이 아니라 현실의 반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 경험상 두 영화 중 더 오래 머리에 남은 건 어웨이크너였습니다. 블랙라이트는 리암 니슨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영화를 지탱하지만, 어웨이크너는 배경이 된 사회 구조의 날카로움이 서사의 허점을 어느 정도 메워줍니다. 가면을 쓴 채 가난한 나라의 빈민촌을 지나 권력의 심장부로 향하는 미구엘의 동선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계층 구조에 대한 선전포고처럼 읽혔습니다.
결국 두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우리가 일상에서 억누르고 있는 감각, 즉 법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신에서 비롯됩니다. 그 불신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는, 이런 영화들이 국적을 넘어 관객의 공감을 얻는다는 사실 자체가 증명합니다. 완성도와 별개로, 주말 밤에 묵직한 대리만족을 원한다면 두 편 모두 충분히 제 역할을 합니다. 단,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질문 하나는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진짜 부패한 구조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