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남겨진다면, 당신은 그것을 해방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2017년 개봉한 SF 드라마 영화 보케(Bokeh)는 바로 그 질문을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설원 위에 던집니다. 저도 비슷한 감각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인지, 이 영화의 첫 장면부터 가슴 어딘가가 묵직하게 내려앉았습니다.

보케, 아이슬란드라는 배경과 사라진 세계의 설계
혹시 여행 중에 늦잠을 자다가 아침 식사를 놓쳐본 적 있으신가요? 황당하고 허탈한 그 기분으로 밖을 나섰는데, 거리에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면 어떨까요. 영화는 바로 그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아이슬란드로 여행 온 연인 제나이와 라일리는 새벽 빛 이후 하룻밤 사이에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증발해버린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제프 설리반 감독은 이 설정을 디스토피아(Dystopia) 장르의 문법으로 풀어내지 않습니다. 디스토피아란 사회 체계가 붕괴된 암울한 미래상을 뜻하는데, 보통 이 장르는 약탈과 생존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반대입니다. 잠겨 있지 않은 차를 마음대로 몰고,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들어가고, 텅 빈 마트에서 원하는 걸 가져갑니다. 겉으로는 완벽한 자유처럼 보이는 이 상황이, 사실은 가장 잔인한 고립의 형태라는 것이 영화의 핵심적인 아이러니입니다.
저는 과거 인천 서구 외곽에서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 늦은 밤 홀로 사무실에 남아 모든 데이터 링크가 끊긴 모니터를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사방이 조용하고 연결이 차단된 그 감각이, 이 영화의 오프닝 장면과 겹쳐 보였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미장센(Mise-en-scène), 즉 카메라 앵글과 공간 배치를 통해 의미를 구성하는 연출 방식이 그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영화의 제목 보케(Bokeh)는 사진 용어에서 가져온 개념입니다. 보케란 카메라 렌즈의 초점 바깥 영역이 흐릿하게 번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영화는 이 시각적 개념을 인물의 실존적 상태에 그대로 이식합니다.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모르는 두 사람의 혼란이, 아이슬란드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 흐릿하게 번지는 구조입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시선과 서사의 균열
제나이와 라일리가 세상의 종말을 바라보는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 차이가 영화의 진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라일리는 이 상황을 일종의 자유로 받아들입니다. 눈치 볼 사람도, 책임질 일도 없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갑니다. 반면 제나이는 "이것이 신의 계획인가, 믿음의 시험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911 시스템도 없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줄 타인도 없는 세상 속에서 종교적 불안으로 스스로를 가두어 나갑니다.
이 두 인물의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는 영화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입니다. 인지 부조화란 서로 모순되는 신념이나 상황이 동시에 존재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함을 뜻합니다. 제나이는 신이 있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고, 신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의미를 잃는 딜레마 속에 놓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두 인물의 갈등이 단순한 성격 차이처럼 보였는데, 보면 볼수록 이것이 인간이 극단적 상황에서 취하는 두 가지 실존적 반응을 대비시킨 구조라는 게 보였습니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생존자 노인 닐스의 등장은 잠깐이나마 희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닐스는 다음 날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죽음 이후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답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 시스템과 타인이 사라졌을 때 개인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지탱되는가
- 고립된 관계 안에서 서로 다른 신념은 공존할 수 있는가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통제 불가능한 환경에 노출된 인간이 의미를 찾으려는 행동을 의미 만들기(Meaning-Making)라고 부릅니다. 의미 만들기란 외상적 사건 이후 개인이 자신의 경험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하며 심리적 균형을 회복하려는 과정입니다. 제나이와 라일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과정을 시도하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찾지 못합니다.
영화의 한계와 그럼에도 남는 것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미니멀리즘 SF 드라마라는 장르적 강점을 가진 이 영화가, 초중반 노드 VPN 광고를 길게 삽입하는 방식은 상업적 노출로서도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종말의 정적을 다루는 장면 한복판에서 정보 보안 서비스의 기능을 카탈로그식으로 나열하는 연출은, 영화가 쌓아온 심리적 긴장감을 한 번에 무너뜨립니다. 감독의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서사의 호흡을 이렇게 끊어버리는 PPL은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본의 한계도 있습니다. 인류 증발의 원인에 대해 단 하나의 실마리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열린 결말(Open Ending)이라기보다 편의주의적 회피에 가깝습니다. 열린 결말이란 관객의 해석에 의미를 맡기는 서사 전략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 내부에 해석의 단서가 충분히 깔려 있어야 합니다. 제나이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결정의 과정도, 인물의 내면을 촘촘하게 보여주기보다 갑작스럽게 처리된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미국 정신건강 연구 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고립과 무의미감은 심리적 고통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꾸준히 보고되고 있습니다. 영화가 제나이의 내면 붕괴를 더 세밀하게 다뤘다면, 이 서사는 훨씬 더 묵직한 울림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케는 볼 만한 영화입니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도, 좀비 아포칼립스의 물량 공세도 없이, 아이슬란드의 차갑고 광활한 자연만으로 인간의 실존적 고독을 정면으로 다루는 시도 자체가 드물고 용기 있습니다. 라일리의 마지막 뒷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것이 허무의 결말이 아니라, 혼자서도 땅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는 조용한 다짐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당신 곁에 남아 있는 단 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번쯤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