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믿어온 안전망이 사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겠습니까. 1973년 마리오 바바 감독의 《리사와 악마》는 바로 그 질문을 스페인의 골목과 폐쇄된 저택 안에서 조용히, 그리고 서늘하게 던집니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제가 떠올린 건 스크린이 아니라 인천 서구의 어느 제조 기업 회의실이었습니다.

리사와 악마, 규칙과 시스템이 무너지는 순간, 진짜 공포가 시작된다
비즈니스 위기관리 자문을 이어가다 보면 한 가지 패턴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됩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리스크 거버넌스(Risk Governance), 즉 조직이 위험을 식별하고 통제하기 위해 수립하는 의사결정 체계와 내부 규정이 단 하나의 예측 불가능한 내부 변수 앞에서 순식간에 기능을 잃어버리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리스크 거버넌스란 단순한 매뉴얼이 아니라, 기업이 외부 충격을 흡수하고 의사결정의 책임 소재를 분산시키는 구조적 방어막을 의미합니다.
인천 서구에서 디지털 인프라 개편 프로젝트를 자문하던 시절, 제가 직접 겪어보니 가장 무서운 건 해킹이나 외부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데이터와 규칙만을 맹신하던 경영진 내부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정보 단절과 시스템 오류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수년간 구축한 인프라가 표류하기 시작했을 때의 그 서늘한 압박감이었습니다. 지표가 전멸의 확률을 가리키고 있는데 손쓸 방도가 없던 그 순간의 현기증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리사와 악마》의 오프닝 시퀀스(Opening Sequence)는 그 감각을 정확하게 재현합니다. 여기서 오프닝 시퀀스란 영화 도입부에서 관객의 심리적 기준점을 설정하는 장면 연속체를 말합니다. 리사가 스페인 광장에서 오르골 소리에 이끌려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단순한 미스터리 도입이 아닙니다. 완벽해 보이는 일상의 표면 바로 아래에 이미 통제 불능의 덫이 깔려 있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선언하는 미장센(Mise-en-scène)입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배우의 동선, 소품 배치 등 화면 안의 모든 시각 요소를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악마의 설계도, 저택 안에서 해부되는 기만의 구조
이 영화가 단순한 B급 오컬트 호러와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지점은, 공포의 원천이 초자연적 괴물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설계한 폐쇄 시스템이라는 데 있습니다. 저택 안에서 드러나는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집사 레안드로(악마)는 오르골 음향으로 리사의 심리적 방어막을 무력화하고, 고장 난 차량이라는 물리적 조건을 이용해 외부인들을 저택으로 유인합니다.
- 백작 부인은 죽은 남편 카를의 시신을 마네킹으로 재현하는 의식을 반복하며, 아들 맥스를 도구로 삼아 과거의 비극을 은폐하려 합니다.
- 맥스는 자신의 연인 엘레나가 의부 아버지 카를과 눈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두 사람을 해쳤고, 리사를 엘레나의 환영으로 투영하며 살인을 반복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현실의 조직 내 권력 역학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표면의 프로토콜 뒤에서 실질적인 조종이 이루어지고, 진실을 아는 사람은 제거되거나 침묵을 강요받습니다. 저택의 집사 레안드로가 시신 인형을 수리하며 백작 부인에게 충성하는 장면은, 제가 자문 현장에서 목격했던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내부자"의 모습과 겹쳐 불편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서사의 긴장이 풀리는 지점이 눈에 밟혔기 때문입니다. 특히 리사가 "오르골 소리를 들었다"는 단서 하나만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미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설정은, 인물의 자기보존 본능을 지나치게 하향 조정한 작위적 연출로 보입니다. 내러티브 드라이브(Narrative Drive), 즉 이야기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내적 동력을 인물의 심리적 설득력 위에 구축하지 않고 외부 장치에만 의존한 결과입니다.
이탈리안 호러의 고전적 맥락에서도 이 문제는 반복적으로 지적됩니다. 장르 비평 전문 매체는 마리오 바바의 작품군이 시각적 완성도와 내러티브 일관성 사이의 긴장을 내재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제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미장센의 섬세함과 서사의 안일한 타협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그 불균형 자체가 하나의 특성이 된 작품입니다.
유령 비행기가 남긴 질문, 결말은 카타르시스인가 회피인가
아침이 밝자 저택은 수십 년간 방치된 폐허로 변해 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리사는 자신이 이미 죽었음을 깨닫습니다. 악마 레안드로는 죽은 자들을 싣고 아주 먼 곳으로 조용히 떠나죠.
이 결말을 처음 봤을 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읽혔습니다. 많은 관객이 초현실적 엔딩을 "아름다운 마무리"로 받아들이지만, 비평적으로 보면 이것은 모든 서사적 채무를 한 번에 탕감해 버리는 편의주의적 장치에 가깝습니다. 살인 사건의 법리적 책임, 시신 처리의 현실적 후속, 생존자 없는 비극의 사후 수습 같은 문제들이 "악마가 데려간다"는 초현실 프레임 하나로 소멸합니다. 각본의 완급 조절(Pacing Control), 즉 긴장과 이완을 교차시키며 관객의 감정 리듬을 조율하는 기술이 후반부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엔딩의 서늘한 장엄함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엘케 소머의 표정과 텔리 사발라스의 기묘하게 평온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마지막 미장센은, 논리보다 감각에 먼저 닿습니다. 공포 영화 전문 아카이브인 에서도 이 영화를 이탈리안 고딕 호러의 미학적 정점 중 하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결국 《리사와 악마》는 완벽한 작품이 아닙니다. 몇몇 장면에서 개연성의 균열이 느껴지고, 인물의 선택이 납득보다 장치에 가까워지는 순간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안고도, 폐쇄된 시스템 안에서 진실이 어떻게 은폐되고 인간이 어떻게 소모되는지를 고딕 미학으로 포착한 솜씨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직접 겪어보니 현실의 위기도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장 무서운 건 언제나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안에 있던 것이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영화 비평이나 투자·경영 자문이 아닙니다.